2025-10-07
보이스피싱이 더 창의적이고, 교묘하고, 정교하게 진화하고 있다. 고도화된 수법 앞에서, 언제까지 보이스피싱이 ‘남 얘기’에 불과할지는 미지수. 보이스피싱 형사 사건을 다수 맡아온 법무법인 대륜 오시온 선임변호사를 만나, 최신 수법과 예방·대응 방안을 들어봤다.
한때 보이스피싱의 고정 레퍼토리는 ‘김미영 팀장’이었다. 어눌한 말투에 대본을 읊는 듯한 허술함으로, 개그 소재나 ‘밈’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범죄 조직은 AI 음성 합성과 딥페이크 기술을 동원해 수법을 정교하게 다듬을 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조직 운영을 통해 피해자를 압박하며 수사망을 피해가고 있다.
피해 규모 역시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건당 평균 피해 금액은 무려 5204만원에 달한다. 한순간에 삶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 있는 액수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리는 피해자도 적지 않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보이스피싱·스미싱 피해액은 전년 대비 106% 증가한 9525억이었으며, 올해는 상반기에만 8000억원 가까운 피해가 발생했다. 발생 건수는 이미 1만6000건을 훌쩍 넘었다.
이런 배경에는 피해자들을 향한 ‘정신적 압박’이 있었다. 현 범죄 조직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피해자의 불안감과 죄책감을 파고드는 교묘한 심리전과 공포심 조장이다.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도록 ‘셀프 감금’을 종용하기도 한다. 지난 9월에도 대구에 거주하던 20대 남성이 검사를 사칭한 범죄자의 협박과 지시를 믿고 대전 모텔에서 반성문을 쓰며 기다리다 구조된 사례가 있었다.
# 젊다고 안심?
피해자 절반이 20·30대
이처럼 오늘날의 보이스피싱 범죄는 전화금융사기를 넘어 피해자의 심리를 통제하는 ‘가스라이팅 범죄’로 진화하고 있다. 법무법인 대륜의 오시온 변호사는 “보이스피싱은 한 발짝 떨어져 보면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실제 상황에 처하면 극심한 심리적 압박을 받아 냉정한 판단을 잃게 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어떤 범죄 유형이 가장 흔하게 나타나나요? 실제 사례가 가장 많은 건 검찰·경찰·금융감독원이나 가족을 사칭하는 전통적인 방식입니다. AI 음성 합성과 딥페이크 영상을 활용해 더욱 정교해지고 있죠. 카카오톡이나 문자로 사기 링크를 보내는 메신저 피싱, 저금리 대출을 미끼로 한 금융사기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습니다. 접근성이 높고 방심하기 쉬우니까요,
20·30대에서 피해가 급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디지털에 익숙한 청년층은 ‘나는 속지 않을 것’이란 착각에 빠집니다. 하지만 취업난과 경제적 압박으로 취업·대출·금융 혜택 유혹에 쉽게 노출되죠. 실제로 가짜 회사를 꾸려 취업 플랫폼에서 지원자를 모집한 뒤 청년들을 전달책이나 수거책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이스피싱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이 높아졌는데도 실제 피해는 왜 급증할까요? 일단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들 수 있습니다. 저금리 대출 같은 제안이 들어오면 순간적으로 판단력이 흐려지죠. 여기에 조직이 ‘가스라이팅’을 가해 피해자를 고립시킵니다. 권위 있는 기관을 사칭해 공포심을 조성하고, 가족·지인과의 연락을 끊게 만들어 외부 도움을 차단합니다. 동시에 끊임없이 전화를 걸고 메시지를 보내 심리적 압박을 가해 스스로 판단할 여유를 빼앗죠. 최근 피해자가 외부와 연락을 끊고 숙박업소에 머무는 ‘셀프 감금’도 같은 맥락입니다.
가스라이팅이 금전적인 손실뿐 아니라 신체적·정신적 피해로까지 이어진 사례도 있나요? 실제 맡았던 사건 중에 20대 여성 의뢰인이 대출을 해준다는 말에 속아 개인정보와 돈뿐만 아니라 자신의 나체 영상까지 넘겼던 일이 있었습니다. 조직원과의 오랜 대화 끝에 회유와 협박에 굴복해 영상을 전달했고, 이후 유포 협박에 시달리며 조직에 완전히 종속됐죠. 의뢰인 명의로 대포통장 개설과 유심이 개통되어 결국 가해자 신분으로 재판을 받았습니다.
# 누구나 당할 수 있는 보이스피싱
가장 먼저 해야 할 조치는?
보이스피싱의 가장 큰 문제는 피의자가 검거되더라도 실상은 ‘또 다른 피해자’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본인도 모르게 대포통장·대포폰 명의자로 이용되거나 전달책·수거책으로 연루되는 식이다. 법원은 이를 ‘미필적 고의’로 판단해 형사 처벌을 내린다. 그래서 오 변호사는 “보이스피싱 사건에서 변호사의 주요 역할은 돈을 되찾는 ‘피해 회복’보다는 의뢰인도 조직에 속은 피해자였음을 입증하는 데 집중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었다면, 가장 먼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나요? 신속히 금융기관에 ‘계좌 지급 정지’를 신청하는 게 중요합니다. 이후 송금 내역, 통화 기록 등 증거를 가능한 한 많이 확보해 경찰에 신고해야 합니다. 추가로 본인 명의로 대포통장이나 대포폰이 개설되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휴대폰에 원격조종앱이나 악성앱이 설치되지 않았는지도 반드시 점검해야 합니다.
피해금을 되찾거나 범인을 잡을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합니다. 송금 직후 지급 정지를 걸어 인출되지 않았다면 희망이 있지만, 대부분 빠르게 돈을 빼돌려 회수율은 낮습니다. 또 해외 콜센터를 기반으로 조직이 운영돼 검거 자체가 어렵기도 하고요. 검거되더라도 피해 회복으로 이어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중국 등 외국 기관과의 공조를 강화하는 법적 근거 마련이 가장 시급한 이유죠. 조직적인 범죄는 개인의 힘만으로는 해결이 힘드니까요.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보이스피싱 무과실 배상책임제’는 무엇인가요? 피해자가 금융사에 피해 사실을 신고하면, 금융사가 사실관계를 검토해 범위 내에서 배상하는 제도입니다. 그러나 ‘무과실’이라고 해도 모든 피해를 보상하는 것은 아닙니다. 피해자의 중대한 과실이 인정되면 배상 대상에서 제외될 수도 있죠. 그럼에도 제도가 시행되면 피해자 구제 가능성이 넓어지고, 금융사 역시 예방책임을 한층 강화할 것입니다. 물론 금융사 부담 비용이 높아져 금융소비자의 부담도 함께 오를 위험이 있겠지만요.
일상에서 꼭 기억해야 할 보이스피싱 범죄 신호가 있다면요? 보통 공공기관의 이름으로 자금 전수조사·임시 보호관찰 등을 언급하며 공포심을 유발하고, 긴급 상황을 조성하곤 합니다. ‘엠바고(특정 기간 동안의 비밀 엄수)’를 지켜야 한다거나 조사를 위해 격리가 필요하다고도 하죠. 이후 앱 설치·개인정보 제공·현금 인출·대출 실행·안전계좌 이체 등의 요구가 이어집니다. 어떤 정부기관도 전화로 개인정보와 금전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긴급한 상황처럼 보이더라도 휘말리면 안 됩니다. 일단 끊고, 한 번 더 확인하세요.
[기사전문보기]
이제는 ‘심리전’이다! 진화하는 보이스피싱 수법 (바로가기)
방문상담예약접수
법률고민이 있다면 가까운 사무소에서 형사전문변호사와 상담해보세요